원주변(邊/邉)씨 전서공파(典書公派) 및 첨지공파(僉知公派)
심양후(원), 전서공파(고려장관), 첨지공파(조선소장)
창조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의 문제점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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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족의 민족관의 뿌리는 깊다. 중국 역사의 시작과 전개 과정은 한족(漢族)과 이민족(異民族) 사이의 대립의 기록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민족을 바라보는 중국 한족의 원초적인 시각은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구별하는 화이사상(華夷思想), 즉 화이지변(華夷之變)이다. 중국 한족의 문명을 만들어낸 한족을 ‘중화’라 일컫고, 주변의 이민족을 이적, 즉 오랑캐로 호칭하며,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반(南蠻), 북적(北狄)으로 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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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른 민족이 세운 다른 나라들이 동아시아 대륙에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바로 전의 왕조인 청나라가 동아시아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동아시아대륙에 존재했던 "모든 다른민족들이 세운 전혀 다른 나라들'"을 포함하는 "새롭게 창조한 역사, 조작된 역사"를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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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선대 왕조 모두 동이(東夷)로 취급되었음은 물론이다. ‘화이지변(華夷之變)’은 문명 수준이 높은 중화의 한족(漢族)이 야만스런 오랑캐 민족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중화(中華)지배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논리로 확장된 것이다. 동이(東夷)는 중국 한족과 같은 민족이 아니다. 그저 다른 나라 사람을 부르는 지역적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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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화이지변(華夷之變)’과 상반된 ‘대일통(大一統)’이라는 통치체제의 전통이 이어져왔다. “대일통(大一統)의 국가정권은 한 명의 황제, 하나의 정부가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판도 내의 민족을 통일하는 행정관리체계”로 정의된다. 대일통(大一統)은 진시 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유지되어온 중화(中華) 제국의 통치 원리이라고 만들었다. 중국 국민당 정부 시절이나 중국 공산당 정권의 수립과정에서도 ‘화이지변(華夷之變)’과 ‘대일통(大一統)’의 논리는 중국 한족의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됐다. 특히 공산당의 이민족 정책의 기조는 철저한 기만전략으로 점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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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초기에 마르크스주의에 매우 충실하여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여러 민족의 해방에 적극 동조했다. 특히 모태동(毛澤東)은 중국의 통일에 반대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자신의 고향인 호남성(湖南省)을 ‘호남(湖南) 공화국’으로 만들자고 호소했었다. 모태동(毛澤東)은 ‘각 성의 인민자결주의’를 강조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각 지방을 27개의 국가로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동아시아 대륙에서 다른 역사를 가지는 다른 국가들의 국가들은 세우는 합리적 논리였다.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에선 만주족과 몽골족 그리고 중국 한족의 인구가 비슷하였다 (1949). 인구 80% 이상이 아무런 족보에도 해당되지 않는 백성이였다 . 공산당은 아무런 "족"에도 포함되지 않는 인구 80%를 중국 한족으로 편입시켰기 때문에 현재는 한족이 인구에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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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태동(毛澤東)은 1939년부터 ‘자유 연방제’적 국가구상을 슬그머니 숨기고, ‘중화민족’을 거론하기 시작한다. 결국 자유연방제는 결과적으로 공산당 중심의 세력화를 위한 민족통일전선 전략의 일환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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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동(毛澤東)은 다민족 자유연방제 대신에 ‘구역자치’를 들고 나왔다. 변경의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에 편입시켜 ‘자치권’만 부여한다는 손문(孫文)과 모태동(毛澤東)의 노선이 확립된 것이다. 부상하는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일통(大一統)’, ‘대중화’의 재현은 중국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을 강화하고, ‘화이질서(華夷秩序)’를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국인 한국과 일본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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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소수민족의 정권으로 편입시키고 있는 것 또한, ‘화이지변(華夷之變)’과 ‘대일통(大一統)’의 논리의 연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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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민족을 ‘동이(東夷)’로 보는 시각이 중화인민공화국 인민들에게 잠재해 있다면, 이는 남한과 북한에게 모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중국 한족은 한국인을 전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동이(東夷)’라고 하였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겨나고 중화인민국 내에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동이(東夷) 민족은 동아시아 대륙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그 중 한국과 일본으로 이주하여 산다. 동아시아 대륙의 어떤 나라에서 살던 동이(東夷) 민족은 계속해서 중화인민공화국 내에 사는 동이(東夷) 민족로 살아온 것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소수민족의 문화가 모두 중화인민화국 문화라 주장하드시, 동이(東夷) 민족은 중화인민공화국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것은 남한과 북한과 일본사람들은 매우 경계해야 할 사항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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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계속 우리가 동이(東夷) 민족을 주장한다면, 매우 위험한 미래를 가질수 있다는 것을 남한과 북한 사람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즉, 북한의 유사 사태시,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 개입하여 북한을 동북 4성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일부 과민한 공상론자들의 이야기만으로 치부하기도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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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고대 동아시아 대륙의 여러 종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다. 동이족의 갈래로는 구이(九夷)가 있다고도 했고 예맥족(濊貊族), 말갈족(靺鞨族), 한족(韓族), 왜족(倭族)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백제·신라는 한 민족인가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실제로 예맥족(또는 부여족), 말갈족과 일부 북쪽의 선비족, 흉노족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정확하게 말하면 이 규정은 틀린 것이 아닐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민족은 동이족(東夷族)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인물들인 치우(蚩尤), 공자(孔子), 순(舜)임금 등은 모두 동이족(東夷族)이었다. 그러므로 치우(蚩尤), 공자(孔子), 순(舜)임금 등은 모두 한국 민족 선조이다"라는 주장도 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더 나아가 중화인민공화국 본토도 본래 한국 민족 영토였다는 논리로 확대돼 양국간 네티즌의 역사 논쟁으로 번지고, 심지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한 적도 있었다. 동이족(東夷族)이라는 개념은 불변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역사 시기에 따라 변화해온 '역사적 개념'이었다. 결론적으로 모든 동이족(東夷族)은 한국인이다라고 정의할순 없지만, 모든 한국인들 중 하나의 뿌리이며, 중국 한족과는 완전히 다른 민족으로 다른 국가를 형성한 group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