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변(邊/邉)씨 전서공파(典書公派) 및 첨지공파(僉知公派)
심양후(원), 전서공파(고려장관), 첨지공파(조선소장)
고대 한국 고유발음을 한나라의 문자로 표현
-
'고구려'라는 말의 어원을 생각할 때 유의할 것은 몽골공화국 오르혼강 기슭에 우뚝 서 있는 8세기 중엽에 세워진 돌궐 제2 제국의 시조 빌게가한과 그의 동생 퀼테킨을 기린 두 개의 돌궐비에서 고구려를 지칭하여 '배크리'라 기술한 점이다. 古터키어에서 B음과 M음은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으므로 배크리(Bokli)는 매크리(MoKli)로 쓸 수 있는데, 이는 돌궐인이 맥구려(貊句麗)를 그렇게 기술한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민족 또는 한국 민족을 예맥족(濊貊族)이라고 하는, 고구려는 맥족(貊族)의 민족인다. 동로마의 역사가 테오필락트 시모카타(Theophylact Simocatta)가 쓴 기록에서 아바르(Avar, 柔然)의 잔여 무리가 북제에 패배한 이후 동쪽 'Mukli'로 달아났다고 하였다. 그 뒤에도 돈황문서 'pelliot-tibetan 1283'에서 고구려나 발해를 'Mug-lig'라 기술한 예를 볼 수 있다. 8세기 말~9세기 초에 편찬된 《범어잡명(梵語雜名), 여러 문자들를 모두 설명한 도서》에서 무구리(畝句理)를 고려(高麗)라 하였다. 내륙아시아 터키계 사람들이 고구려를 '무크리'로, 즉 맥구려(貊句麗)로 불렀음을 말해준다. 이는 곧 고구려라는 단어에서 어간(語幹)이 되는 것이 '구려'이고, '고(高)'는 덧붙여진 관형사임을 뜻한다.
-
고구려어에서 성(城)을 '구루(溝漊)나 '홀(忽, Khol)'이라 하였다. 이는 '골', '고을'로써, 읍(邑), 동(洞), 주(州), 군(郡), 현(縣) 등으로 표기되었다. 고구려와 신라에서 행정 구역을 지칭한 평(評)이란 말을 왜국에서 수용하여 이를 '고호리(ゴホリ)라 하였는데, 평도 '고을 또는 마을'이란 말을 그렇게 기술한 것이다. 곧 '고구려'는 '구려'에다 '크다', '높다'를 덧붙인 '큰 고을', '높은 성'이란 의미를 지닌 말이다. '고구려'라는 국호는 5세기 중엽 이후로는 '고려'로 줄여서 쓰였다.
-
고구려 국명의 의미는 '큰 고을' 또는 '큰 마을'이었는데, 고려려인이 발음하는 '큰 고을' 비슷한 발음인 한자 문자가 고구려인 것이다. 특히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자 문자를 빌려 썼지만, 문장의 순서는 한글과 같이 주어, 목적어, 동사로서 한자(한나라 문자) 문자의 순서를 주어, 목적어, 동로 표기했다.
-
문자가 없을 때 고유말을 어떻게 표기하였는지를 설명한 영상: 한자의 뜻은 무시하고 한자의 발음만 사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