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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ively Defined Korean and Chinese HistoryArtist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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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정의된 한국과 중국 역사

역사는 진실인가 허구인가?

 

  • 역사가 진실을 기록하는가의 질문에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역사라는 것은 힘을 가진 자들의 입맛에 맞는 선별된 사실만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역사가 거짓인가의 질문에 그렇다고 말해서는 안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능성도 열어둘수 있다. 현상을 보고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역사이니, 그들만의 기록은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뿐 아니라 실생활의 뉴스도 누구의 입장에서 보도를 하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질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올바른 역사를 객관성에서 평가한다고 하지만, 그 객관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가지고 있는 혼란을 감안하면 역사적 사실은 시간이 흐른 뒤 달라질수 있다. 

정치적 목적에의해 창조한 만들어진 역사 예시: 손문(孫文) 등 중국 한족이 만든 중화민국 또는 중화인민공화국 역사

 

  • 다음의 내용은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시작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다민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한족중심의 국가관을 만들어 국민의 통합에 문제를 발생하게 만들었다. 어는 나라도 민족을 구분하는 경우는 찾아볼수 없으며 일종의 민족 차별화 정책이다. 물론 역사상 다른 민족의 국가들이 존재했던 동아시아 대륙 국가들의 역사들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는 다르다.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인지하고 공통의 공유할수 있는 다민족 역사관은 청나라때부터이다. 만약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 한족 중심의 역사를 주장한다면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시작한 1949년부터이다.

  • '20세기 초 신해혁명을 일으켜 청나라를 멸망시킨 손문(孫文) 등 당대 혁명가와 지식인들은 고민 끝에 한 가지 방안을 냈다. 역사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은 중국 대륙이 여러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지만 결국 한족 문화의 우월성에 동화됐다고 꾸며냈다. 한족이란 개념 자체도 새롭게 만들어 냈다. 한족의 역사는 짧다. 불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학자이자 혁명가였던 장빈린은 기원전 2세기의 역사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해답을 얻었다. 중국 고대 전설 속 인물인 황제(黃帝) 헌원(軒轅)의 자손들이 중국 한족이라고 조작되었다. 허술한 기준이지만 상관없었다. 중국한족을 만주족과 구별하기만 하면 됐다. 장빈린과 동료 혁명가들은 “중국 한족이 가장 중요하며 만주족이 설 자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은 100년 전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꾸며낸 역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5000년 동안 세상을 호령하던 ‘한족 국가’ 중국이 아편전쟁 등 외세의 침략을 받아 고난을 겪었고, 이제 다시 중국이 위대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시각이다.'

만들어진 가짜 중국 한족의 숫자

 

  •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에서 제2차 국공 합작(1949년 12월 7일) 이후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은 지방군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통일적이지 못한 비효율적인 전술 등으로 인하여 공산당을 상대로 패색이 만연해졌고, 공산당은 곧 중국 본토 전역을 장악하였다.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 주도의 중화민국은 결국 국부천대를 통하여 본토를 버리고 타이완성, 푸젠성 진먼도로 파천하였다. 모태동(毛澤東)은 서양열강에서 패배하기만 하던 이전 중국에서 탈피하고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신(新)중국을 구상하였다. 

  •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에선 만주족과 몽골족 그리고 중국 한족의 인구가 비슷하였다 (1949). 인구 80% 이상이 아무런 족보에도 해당되지 않는 백성이였다 . 공산당은 아무런 "족"에도 포함되지 않는 인구 80%를 중국 한족으로 편입시켰기 때문에 현재는 한족이 인구에 가장 많다.

  • 위에서 언급한 만주족이 중화인민공화국 전체 인구중 8.5%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실제로 중국 한족의 비율은 8~9%로 판단할수 있다. 중국 한족의 개념은 혈연적 의미가 아닌 문화 공유의 개념이므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사는 92%의 중국 한족 중 80%가 2000년 기준 중국 한족이 된지 50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다. 

  • 실제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체 인구중 한족 8.5%, 몽골족 8.5%, 만주족 8.5%이다.  74.5%가 나머지 53개 민족들이다. 53개 민족들이 각각 1.4% 정도이다. 

  • 그리고 2024년 인구통계상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한족이 중화인민공화국 총 인구의 91%라 하는데, 만약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한족의 통계치 91%를 100%로 기준으로 하면, 93%의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한족는 1949년도에 만들어진 중국 한족이라는 의미이다.

  • 증요한 것은 중국 한족이라는 민족을 창조하여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족주의 정책이라고 할수 있으며 이런한 정책은 외국에서는 매우 부적절하고 세계인에게 민패와 피해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토와 문화와 사람에 대한 거짓 역사 만들기

 

영토

  • 만리장성: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만리장성을 등재할 때까지만 해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하이관(山海關), 서쪽 끝은 자위관(嘉峪關)으로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며 중국은 산하이관에서 더욱 동쪽으로 새로운 만리장성을 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국가문물국은 2000년대 중반에 만리장성 길이를 6천km, 2009년에는 8천851km라고 발표했다가 2012년에는 2만1천196.18km라고 늘렸습니다. 

  • 요동은 원래 조선 땅(모태동 毛澤東과 주은래 周恩來):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동북공정’을 국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로 격상시켜 ‘고구려는 우리나라(중국) 고대에 하나의 지방정권이었고, 국민은 주로 한족 이주민을 위주로 하였다’거나 ‘고구려는 우리나라(중국) 동북지역의 오래된 소수민족 중 하나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고대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애써왔다. 2000년 허금도(胡錦濤)는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중국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연구계획을 비준·승인했으며, 2002년 2월 중국 사회과학원과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세 성이 공동으로 1500만위안(22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상 연구 공정’(동북공정)을 출범시켰다. 

  • 모태동(毛澤東)이 언급한 진실: 북한과 중국이 국경 획정 협상을 하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중국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과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가 ‘요동 지방은 원래 조선 땅이었으나 고대 왕조가 조선민족을 압록강변까지 내몰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27일 확인됐다. 이는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 주장해온 중국의 국가 차원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이다.마오쩌둥 주석이 요동 지방이 애초 고구려·발해 등 조선 선조들의 영토였으나 당 등 중국 봉건왕조의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1964년 10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제11책. 1958년 11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4책. 참고문헌 : “Mao Zedong’s Statement ‘Liaodong Was Originally Joseon Territory’ Confirmed 모태동. ‘요동은 원래 조선 땅’ 발언 확인.” 한겨레, 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26249.html .  

  • 주은래(周恩來)가 언급한 진실: 저우언라이(주은래 周恩來) 총리는 1963년 6월28일 베이징을 찾은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나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으며 심지어 예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참고문헌: 1963년 6월28일 중국 외교부가 펴낸 <외사공작통보>.

 

문화와 사람 

  •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중 조선족이라는 민족이 있다. 조선족은 조선시대 만주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서 조선 사람들이 19세기에 많이 이주하였으며 당시 국가의 영토의 분계선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조선 사람들은 만주지역을 조선의 영토로 생각했다. 현재 한국이나 몽골이나 일본이 존재하는 있는 한, 한국이나 몽골이나 일본 나라의 문화를 자국 문화라 하는 것은 피자나 햄버거를  중화인민공화국의 전통음식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한국의 한복, 김치, 삼계탕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전통의복과 전통음식이라 하고 있다.

  • 한국역사 중 조선시대 사람인 윤동주를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족이라 하고 있다. 

 

동아시아 대륙 국가들의 역사는 다음을 주의하여 역사를 판단해야한다.

 

  1. 동아시아 대륙의 나라들의 기록은 춘추기법(春秋筆法)을 많이 사용하였다. 춘추기법(春秋筆法)에서는 사건과 인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평가보다, 수사법 자체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완곡어법으로 평가를 대신한다. 그러므로 굵직한 사건은 역사로 인정할 수 있지만, 세세한 사건은 여러 검증이 필요하여, 검증이 없는 역사서 기록은 인정되기 힘들다. 동아시아 대륙의 나라들의 대부분의 역사서는 명나라 이후에 재재작된 것이고 한반도의 경우는 조선시대 이후에 재재작된 것이다. 교차검증으로 자신들의 나라에 유리하게 수정된 기록이 아닌 그 시대별 기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2. 특히 고려(리) 시대에 고려(리)의 상품은 진품이라 송나라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키려는 입장과 제3자 입장에서 기록된 형평성보다는 이득을 위한 만들어진 기록이 있을수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현재에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짝퉁(가짜)제품이 많으며 짝퉁제품에 대한 제재나 규제가 없으며, 진품(진짜)을 보호해 주는 법이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유해한 가짜 식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춘추기법(春秋筆法)을 이용하여 변형시킨 기록이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3.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산주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관은 고대왕국, 중세 및 근현대 역사관과는 다르다.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서에서는 영웅이 역적이 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문화대혁명으로 공자의 무덤(孔墓)이 파묘되었다. 항우의 패왕묘(霸王廟), 우희묘(虞姬廟)가 파괴되었다. 산시성 운성박물관은 원래 관우의 사당이었다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북송의 시인인 임화정(임포)(林和靖, 967~1028)의 무덤이 파묘되었다. 소동파의 글을 파내고 훼손했으며, 취옹정(醉翁亭) 안에 보관되어 있던 역대 명가(名家)들의 서책과 그림들을 모조리 훼손했다. 영락제의 무덤 장릉(長陵) 능은전에 있던 영락제의 석상도 파괴되었다. 청나라 말기의 장태염(章太炎), 서석린(徐錫麟), 추근(秋瑾) 및 양내무(楊乃武)와 소백채(小白菜)의 사건에 관련된 양내무(楊乃武)의 무덤이 파묘되었다.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의 무덤을 파묘해서 악비(岳飛)의 유골을 불태워서 가루로 만들었다. 등 수많은 문화를 공산당의 이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청나라의 문화는 자유중국인 대만이 계승하였고, 명나라의 문화는 한국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고, 송나라의 문화는 베트남에서 찾아볼수 있고, 당나라의 문화는 일본에서 찾아볼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4. 1949년 '중국사회사: 요' (The History of Chinese Society, Liao)라는 저서의 서문에서 진·한부터 청에 이르는 중국의 전근대 왕조를 ‘전형적 중국왕조’와 ‘정복왕조’ 두 종류로 구분했다. 이 책은 중국학자 마가승馮家升과 공저했다. ‘정복왕조’에서는 통치민족이 중원으로 들어온 방식에 따라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그 하나는 ‘침투형 왕조’ (Dynasties of Infiltration)로 16국과 북위 등이 대표적이고, 다른 하나는 ‘정복왕조’ (Dynasties of Conquest)로 요·금·원·청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80%의 알수 없는 민족을 중국 한족으로 조작해서 역사서를 한족 중심의 나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침투형 왕조’ (Dynasties of Infiltration)와  ‘정복왕조’ (Dynasties of Conquest)' 모두 중국 한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므로 한족 중심의 나라에는 모순이 생긴다. ‘침투형 왕조’ (Dynasties of Infiltration)로 16국과 북위는 다른 민족에서  중국 한족으로 개조한 사람들도 역사서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정복왕조’ (Dynasties of Conquest)로 요·금·원·청은 선사시대부터의 자신만의 오랜 역사를 가진 완전 타민족이기 때문에 중국 한족 중심의 나라와는 절대 일치할수 없는 이론이다.

  5. '중국(中國 the region in the center)'이라는 단어의 뜻: '중국(中國)'이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동아시아 대륙에서 사용한 단어이다. 단, 국가 이름은 아니다. 국가 이름으로 '중국(中國)'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쓴 시기는 청나라부터이다. 즉, 청나라가 중국이고 이전에는 중국이란 나라는 동아시아 대륙에 없었다.

  6. '중국(中國)' 단어의 의미는 동아시아 대륙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역' 또는 '가운데(Center) 있는 지역'이란 뜻이다. 예를 들어 한국 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자신들의 나라를 '중국(中國)' 즉, '중심이 되는 지역에 존재하는 나라'라고도 했다. 또한 고구려는 신라를 동이(東夷)라고 불렀고 백제는 신라를 동이(東夷)라 불렀고 신라는 일본을 동이(東夷)라 불렀다. 일본도 가끔 일본 자신을 '중국(中國 Centered region)'이라고 부른 기록이 있다. 중국(中國 Centered region) 또는 중원(中原 Centered region), 동이(東夷 people in the Eastern region), 서융(西戎 people in the Western region), 남만(南蠻 people in the Southern region), 북적(北狄 people in the Northern region)은 자신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다른 민족 또는 다른 나라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한족 중심의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1/3로 줄어들어야 이치에 맞는다. 또는 모태동(毛澤東)이 주장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각 지방을 27개의 국가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다른 역사를 가진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면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천연 자원이 소수민족의 영토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중화인민공화국이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한반도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또는 중화민국인 타이완의 동아시아 대륙 역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어떤 사람은 중국은 한국의 일부분이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한국은 중국의 일부분이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고조선이 망하고 그 후예들이 세운 모든 나라들이 한국의 조상이란 것과 청나라는 고려(리)에서 분리된 것을 가정하면, 중국은 한국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대륙에 있는 과거의 모든 나라들을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나라들이라고 주장하면 한국이 중국에 일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이론은 경우에 따라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고대 왕국시절 공유된 역사를 가진 경우가 많으며 동아시아 대륙의 수많은 완전 다른 민족의 나라들 중에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중화민국인 타이완은 현재까지 나라를 유지한 나라이다. 근현대 시점으로 판단할 때, 한국 역사관과 중화인민공화국 역사관 및 중화민국인 타이완 역사관으로서는 역사를 갖는 시기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한반도 역사는 신라시대 중 약 668년부터 하나의 나라에서 다른 하나의 나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대한민국까지 이어졌다. 발해가 망한 후 발해유민을 고려(리)에 유입된 것을 기준이면 918년을 기준으로 할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인 타이완은 청나라부터인 1636년부터 하나의 나라에서 다른 하나의 나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인 타이완까지 이어졌다. 또는 중화민국인 타이완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 한족 중심의 역사를 주장한다면 중화민국인 타이완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시작한 1949년부터이다.

  • 중화인민공화국과 또는 중화민국인 타이완의 동아시아 대륙은 각기 다른 나라들이 존재하며 다른 문화들을 가졌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인 타이완과 같은 역사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은 약 1636년부터 청나라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진다. 동아시아 대륙에 동시대에 다른 민족이 세운 나라가 같이 있을 때는 같은 문화의 나라들이라 할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 영화중 남한산성(南漢山城 (2017))에서는 1636년 청나라가 조선 나라를 침입한 전쟁을 다룬 영화이며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조선의 왕인 인조가 피난가게 된다. 당시 동아시아 대륙에는 명나라와 청나라가 존재하였으며 이 두 나라는 역사와 민족이 다른 나라이며, 동아시아 대륙을 청나라가 차지하면서 동아시아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청나라부터 동일문화를 가진게 된 것이다.

  • 만약 중국 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중화민국인 타이완의 주요 역사라면,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중화민국인 타이완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식민지 기간에 살았던 것이다. 즉, 대부분의 동아시아 대륙의 역사는 이민족의 식민지였으므로 중국한족의 역사는 연속적 역사가 아니다. 

  • 동아시아 대륙에서는 전체 대륙 중 동부와 중부의 일부분을 통일한 왕조가 있었으나 다시 여러 다른 나라가 생기면서 동일 문화를 보전하지 못하고 여러 다른 나라들의 역사가 공존되었다. 원주 변씨가 주로 살았던 조선시대에서나 동아시아 대륙에는 오직 하나의 왕조가 존재하였다. 그리고 동아시아 대륙의 하나의 왕조는 역사적으로 여러 다른 민족의 나라들를 세우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땅덩리가 큰 나라를 관리하는 일이 추가의 다른 나라 침입을 하는 일에 관심을 둘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동아시아 대륙에 존재한 하나의 왕조는 조선 나라와는 서로가 평화로운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왕조가 동아시아 대륙에 존재했던 때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나라의 존재가 중요했다. 왜냐하면 한반도 나라가 존재하므로서 동아시아 대륙에 존재하는 왕조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고 믿었다. 또한 황주 변씨 시조인 려가 송나라에서 고려로 왔을 때는 동아시아 대륙에 송과 금 나라가 있었고 차후 원나라(몽골)가 동아시아 대륙을 차지한다. 금나라를 피해 려가 송나라(감숙성(甘肅省) 농서(隴西))에서 고려 나라로 이주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동아시아 대륙의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나라는 동아시아 대륙에 여러나라가 존재하면 여러 나라를 이용하여 힘의 균형을 이루었고, 동아시아 대륙에 하나의 나라만 존재했을 때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는 동아시아 대륙의 어느 나라가 존재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외교를 해야했다. 한반도에 존재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대륙에 여러 나라가 존재했을 때 더 유리한 외교를 할수 있었다.

  • 2024년에도 중화인민공화국의 다른 민족들이 분열의 가능성은 같은 상황이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강압적이고 비인권적 정책으로 많이 안정화되고 있다.

  • 동아시아 대륙의 나라들 중 한국의 역사의 나라를 침략한 나라는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요나라, 원나라, 청나라 이다. 이들은 한나라를 제외하고 중국 한족의 나라가 아니며,  중국 한족의 나라는 한국의 역사의 나라와 전쟁한 경우는 찾아볼수 없다. 하지만 동아시아 대륙의 역사중 중국 한족의 역사의 나라인 한나라와 송나라와 명나라의 존속기간은 422년과 319년과 276년이라 전체 1017년밖에 안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전쟁 때 남한 입장에서 침략한 역사가 있지만 중국한족으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전쟁시 북한을 도와 준 것이다.

  • 명나라가 조선을 일본침략시 도와준 것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전쟁시 북한을 도와준 것이라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명나라와 중화인민공화국은 조상과 역사가 다르며 이민족과 한국과의 전쟁이 아닌 한국 전쟁은 동족간의 정치이념 차이로 생긴 전쟁이라는 것이다. 

  • 지금의 역사관으로 한국의 역사는 668년 또는 918년부터 같은 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중화인민공화국과 또는 중화민국인 타이완의 역사는 1636년 또는 1949년부터 같은 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24년 기준의 한국의 전체 역사기간은1356년 또는 1106년이다. 2024년 기준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인 타이완의 전체 역사기간은 388년 또는 75년이라 할수 있다. 

 

동아시아 대륙과 한반도의 역사는 길고 각 나라는 본인들의 역사가 668년 또는 918년과 1636년 또는 1949년 이전의 역사를 포함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의 나라 개념이 근현대 생긴 것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적인 견해로 해석할수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타이완)의 역사는 여러 다른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를 통일하여 하나의 나라 문화가 되기에는 너무 짧은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타이완) 사람들도 어떤 전통과 역사가 자신의 역사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서 확실한 전통과 역사를 주장하는데 문제를 야기하며 다른 나라를 역사조차 자기것으로 착각하는 오류는 범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만주족 입장에서는 치파오(Qipao)가 전통복장이고 청나라가 마지막 왕조이었기 때문에 서양의 나라에서도 치파오를 전통복장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수의 중국 한족은 중국 한족의 나라가 역사상 연속적이지 않아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중국 한족의 복장을 전통복이라 주장한다. 하나의 나라에서 만주족과 중국 한족의 입장에서 서로 전통 복장은 다른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유할수 있는 공동의 역사가 짧은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사는 나라여서 이런 문제를 발생한다. 마치 한 남자가 결혼한지 1년이 되었고 아내와 남편사이에 아기가 있다고 하자. 그 남자는 부부의 공동 문화가 부부의 아기와 살았던 시간이 아니라, 아내와 관계없는 남자가 졸업한 남자중학교가 부부의 공동 문화라 주장하는 것과 같다. 한편 어느 나라이든 현재 자신의 영토에 존재했던 나라들은 자신의 역사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치에 안 맞을수 있다. 예를들어, 옆집은 외국인이 10년전부터 살았다. 1년 전에 나는 옆집을 사서 나의 집과 옆집을 합쳐서 나의 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외국인의 나의 세입자가 되었다. 그러면 그 옆집은 현재 나의 집이고 그 외국인은 현재부터 나의 집에 사는 일원이 될수는 있다. 하지만 10년전부터 그 외국인이 같이 살았다고 말할수는 없다. 미국도 다민족 국가이지만 영국, 프랑스문화를 자국문화라 하지 않고 미국이 생긴 시점 이후의 미국만의 문화를 만들어 미국문화라 한다. 중국 한족이 다수라 할지라도 중국 한족을 주요 민족으로 하는 정책은 하나의 나라의 공통 의식에 저해를 가지며 공동문화가 형성된 후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실질적으로 바람직하다.

동아시아 대륙 여러 나라들의 역사에서 분리된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타이완, 역사

 

  • 동아시아대륙의 나라들의 그룹으로는 동아시아 대륙의 역사책을 근거로 북쪽의 다른 민족, 동쪽의  다른 민족(동이족의 주요지역이다), 남쪽의  다른 민족, 서쪽의  다른 민족으로 나누고 중국 한족이 정의하는 중앙 지역의 나라로 구분하며 중앙지역을 중원 또는 중국(나라 이름이 아닌 지역이름)이라 부른다. 중국 한족은 중앙지역의 주요 민족이라는 그들의 정의이다. 예를 들어 서쪽의 다른 민족의 나라는 티벳의 이전 나라인 토번 (Tibetan Empire)이란 나라, 서하, 위그르족, 강족, 저족 등, 북쪽의 다른 민족의 나라는 거란(Kitan), 수나라, 당나라, 북위, 돌궐(First Turkic Khaganate) 등,  동쪽의 다른 민족의 나라는 청(여진) 등이 있다. 동아시아 대륙의 역사에서는 나라가 많을 때는 동시에 16개의 나라까지 존재한 시기가 있었다.

  • 동아시아 대륙 역사중 동쪽의 다른 민족의 나라에 원나라가 있었다. 비록 몽골이라는내몽골과 외몽골로 구분되어 있고 외몽골 또는 몽골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다. 

  • 북쪽지역과 동쪽지역 국가: 동아시아 대륙 중앙지역을 기준으로 북쪽과 동쪽 지역의 국가들은 따로 존재하였으나 점차 동쪽 지역의 국가들이 북쪽 지역으로 이동되었고 그 범위가 만주까지 이루었다. 이 지역에 살던 종족을 예맥족(濊貊族)이라 부르며 예족(여진, 동예, 옥저)은 주로 동쪽, 맥족(고조선 또는 조선, 부여, 고구려(리) 또는 고려(리), 발해, 선비, 흉노)은 서쪽에 살았다. 고구려(리)는 만주 지역 외 동아시아에 북쪽지역인 산서(山西), 하북 (河北), 백제는 한반도 이외에 동아시아에 동쪽지역인 하북 (河北), 산동 (山東), 강소 (江蘇), 신라는 한반도 이외에 동아시아에 동쪽지역과 남쪽지역인 산동 (山東), 절강 (浙江)에 영토가 있었다.

  • 서쪽지역 국가: 서쪽 지역의 국가들 중 동아시아 서쪽으로 이동하여 중동지역으로 이동한 경우가 돌궐 나라에서 터키가 있다.

  • 한국역사의 국가들 중 북쪽지역의 국가가 한국역사에 포함(조선 또는 고조선, 고구려(리) 또는 고려(리), 발해 나라가 포함된다) 되었을 때는 서쪽지역의 국가들과 연합하여 중앙지역의 국가와 전쟁을 하였다. 발해 멸망 후 한국역사에서 북쪽지역의 국가가 없어졌다. 하지만 고려(리)가 고구려(리)를 계승한 나라라는 것은 한국역사에 고구려(리)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 한국역사의 국가들 중 북쪽지역의 국가는 동아시아 중앙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역사에서 북쪽지역의 국가가 사라진 후 세워진 국가들은 늘 중앙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려 하였다. 그들의 관심사는 동아시아 중앙지역 영토였지 한반도 영토는 아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나라와의 전쟁은 동아시아 중앙 지역과 전쟁시 후방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에 대한 방어책이었다. 고려(리) 나라 때부터는 북쪽지역의 국가와 전쟁을 주로 있었고 북쪽지역의 국가는 중앙지역의 국가와 전쟁을 하고 항상 결국 북쪽지역의 국가는 동아시아대륙을 차지하게 된다.

  •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에 사는 조선족은 조선시대에 생활이 어려운 조선 사람이 만주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주로 1900년도부터이어서 동아시아 대륙에 사는 다른 민족과는 다른 조선 나라 사람의 후손이며 그들의 문화와 언어는 2024년 현재의 한국의 고유의 문화와 언어로부터의 기원이다. 몽골가 자국의 문화를 가지듯, 조선족의 문화는 한국이 존재하는 한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라 정의할수 없는 이유이다.

  • 중국 한족이 정의하는 중앙 지역의 나라는 남북으로 황하강과 장강 사이이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하남, 호북, 강서, 안위성이며, 동쪽 지역(동이東夷 민족)은 산둥, 강소, 절강 복건, 요령, 길림, 흑용강에 해당되고, 남쪽 지역(남만南蠻 민족)은 후남, 장시 광동, 광서에 해당되고, 서쪽지역(서융西戎 민족)은 섬서陝西, 감숙, 청해, 사천, 귀주 원남, 서장, 신장에 해당되고, 북쪽지역(북적北狄 민족)은 산둥, 하북, 산서山西 등이다. 동아시아 대륙에 광할한 대륙의 나라를 이룬 것은 북쪽의 다른 민족 또는 동쪽의  다른 민족이 세운 나라였다. 베이징은 오랫동안 북쪽지역 나라의 영토였으며 중국 한족의 나라 중 중국 한족의 마지막 왕조인 명나라가 처음으로 북쪽에 위치한 베이징에 수도를 1421년 정하고 북쪽의 국경이다. 

  • 다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세워지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공내전을 하였다. 중화민국의 장계석(蔣介石)는 동아시아 대륙의 서쪽지역과 남쪽지역을 근거로 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태동은 만주 지역을 근거로 하였다. 만주 지역의 민족들은 만주족 및 북쪽 지역 민족들의 지역이었다. 또한 모태동(毛澤東)은 중국 한족이 아닌 회호(回胡)족이다. 중국 공산당의 시발점 또는 주요 집단은 중국 한족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북쪽 지역 민족이 주도한 것이며 청나라의 민족과 동일하다 말할수 있다. 교통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 때문에 억압적인 방법이 있자 않으면 민족의 이동은 거의 이어나지 않음을 근거로 한다.

  • 청나라 역사서인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Researches on Manchu Origins)' 도서에서는 여진,만주인이 시대별로 부여, 고려(리), 삼한, 백제, 신라, 숙신, 발해 읍루, 물길, 말갈, 발해, 여진(건주, 완안)로 그 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한국의 역사와 청의 역사는 부여, 고려(리), 삼한, 백제, 신라가 같은 계통이다. '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Researches on Manchu Origins)' 에서는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 혹은 고려(리)의 인물로 단정(斷定)하면서 부여, 삼한, 백제, 신라, 발해 등을 만주족의 계통과 기원으로 포함시켰다. 만약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Researches on Manchu Origins)가 사실이라면 고려(리)시대 이전에는 한국인과 청나라 사람은 같은 민족의 조상을 가진다. 또한 청나라 시조인 아이신기오로 부쿠리용숀(愛新覺羅 布庫哩雍順 이름의 청나라 말의 고유의 발음을 한자로 차용했을 뿐 한자의 의미와는 무관하다)는 고려(리) 시대에 김함보(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 김행(함보, 김준))로서 고려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백두산 남쪽 지역에서 신라 나라에서 고려(리) 나라로, 고려(리) 나라에서 조선 나라으로 이어지고,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Researches on Manchu Origins)를 근거로 설명하면, 백두산 북쪽에서 신라 나라에서 고려(리) 나라로, 고려(리) 나라에서 청 나라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나라의 만주족 또는 여진족은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Researches on Manchu Origins)에서 언급하듯이 한국의 역사에 늘 연관되어 있었다. 그들은 한국 역사에 피지배층이었다. 하지만 연관되어 있었지만  마침내 금나라 그리고 청나라를 세우고 그들은 지배층이 되었다. 만약 북한이 남한과 통일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고 독립된 두 나라로 미래에 존재한다면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청과 조선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 한국의 역사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중 가장 약소국인 신라가 결국에는 살아남아 한국 역사를 이어갔다. 뛰어난 전투력과 문화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끈질기 노력의 성과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대륙에서는 한 나라에서 한나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나라들이 서로 각축을 벌려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전투력이 강했던 여진족이 동아시아 대륙의 마지막의 왕조 나라이었다. 마지막 왕조가 된 것은  청나라가 근대시대 존재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국 한족이 정의한 한족의 숫자가 많다고 하나 그들은 근현대까지 많은 세월동안을 다른 민족의 피지배층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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