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변(邊/邉)씨 전서공파(典書公派) 및 첨지공파(僉知公派)
심양후(원), 전서공파(고려장관), 첨지공파(조선소장)
H: 황주 변씨, W: 원주 변씨, J: 전서공파
원주 변씨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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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변씨 전서공파인 숙(肅)과 원주 변씨 사령공파인 안서(安緖)는 원주변씨 시조 안열의 명을 받아 원주변씨가 되었지만, 안열의 직계 후손이 아닌 안열의 조카와 동생이기 때문에 황주변씨 세대로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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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肅)의 후손(안열 조카) - 전서공파(典書公派): 숙(肅)의 후손들은 1950년 한국전쟁이전까지 황해도 개성에서 거의 600년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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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顯)의 후손(안열 첫째) - 별좌공파(別坐公派): 현(顯)의 첫째, 극충(克忠, 1434- ?)는 원주 변씨 시조인 변안열(安烈)부터 경기도 양주(楊州)에 살았다. 원주 변씨 4세대 변처령(處寧)부터 인천(仁川)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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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顯)의 후손 - 참의공파(參議公派): 현(顯)의 둘째, 극민(克愍)은 평안도 태천에서 살았다. 원주 변씨 4세대 변재중(載重)부터 평북 태인(泰仁)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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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㶊)의 후손(안열 둘째) - 첨추공파(僉樞公派): 이(㶊)의 첫째, 차희(次憙, 1392-1462)는 경북 안동 금계, 예천, 용문, 봉화 거촌에서 살았다. 원주 변씨 5세대 변희리(希李, 1435-1506)가 연산군 무오사화(1498년) 때 경북 예천으로 옮겨가 살았다. 변희리의 후세인 원주 변씨 7세대 변영순(永淳)부터 안동의 금계, 봉화, 군위 등지에 살았다. 원주 변씨 6세대 변점(店)부터 강원도 원주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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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변씨는 이(㶊)의 셋째아들 상근의 후손인 호군공파입니다. 위키피디의 전주 변씨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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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預)의 후손(안열 셋째) - 훈련공파(訓鍊公派): 제주에 살고 있는 원주 변씨는 변안열의 셋째 예(預)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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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預)의 후손 -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막내 손자인 세청(世淸)과 후손들은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이다. 세청(世淸)은 1405년(태종 5) 정국이 혼란하자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피신해 제주에 입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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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자유중국, 대만,의 변(邊)씨에 대한 설명이다. 변(邊)씨 가문은 인구가 2024년 약 458,000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전체 인구의 약 0.025%를 차지하는 차지하는 동이족(東夷族) 집단이다. 변(邊)씨라는 성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자유 중국, 대만,에 모두 상위 100개 성씨에 포함되지 않다. 변(邊)씨라는 성은 은(殷)나라 또는 상(商)나라 자(子)씨라는 성에서 유래되었다.
다음은 한국 변씨 분파를 도표로 보여준다. 안열의 후손은 H7-2, 안서의 후손은 H7-3, 숙의 후손은 H7-1-2로 표시되어 있다. H7-2는 황주변씨 7세대, 변량의 둘째아들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