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변(邊/邉)씨 전서공파(典書公派) 및 첨지공파(僉知公派)
심양후(원), 전서공파(고려장관), 첨지공파(조선소장)
득성,장연,황주,원주변씨 (원주변씨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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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덕성, 장연, 황주, 원주 변씨는 각각 D, J, H, W 다음에 세대 번호를 표시했다. 표에서 나오는 장연, 황주, 원주 변씨의 모든 조상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Figure 1과 Figure 2는 변씨의 본관의 변화과정, 득성, 장연, 황주, 원주로 변화한 것을 보여준다. 장연 변씨부터 원주 변씨의 2세대 변숙까지 총 13세대이고, 그 기간은 장연 변씨인 변유영의 고려 인종 때(1138)의 기록부터 변숙이 사망(1399)한 때까지의 기간을 계산하면 261년이다. 한 세대의 연도를 계산하면 20년으로 나온다. 변씨는 장연 변씨에서 황주 변씨로, 황주 변씨에서 원주 변씨로 가지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의 표시는 친척에서 입양된 아들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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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성 변씨 0세대, 변앙은 송나라에서 관직을, 득성 변씨 1세대, 변경은 송나라와 신라에서 관직을, 득성 변씨 2세대, 변중량은 송나라에서 관직을, 득성 변씨 3세대, 변연은 송나라에서 관직을, 득성 변씨 4세대 또는 장연 변씨 1세대, 변유영은 송나라와 고려에서 관직을 가졌다. 변앙부터 변유영까지 송나라 사람으로서 변경은 잠시 신라에서 관직을 가졌고, 변유영은 고려로 이동하며 득성 변씨에서 장연 변씨로 분리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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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변씨세보>에 의하면 '원주 변씨는 송 나라 말기에 고려 황주에 와서 정착하고, 다시 원나라로 들어가 심양이라는 지역의 제후로 임명되었다' 라고 되어 있다. 장연 변씨 3세대의 첫째 아들, 충효는 장연 변씨의 후손이 되었고, 3세대의 둘째 아들, 충제의 손자, 변려는 황주 변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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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 변씨 1세대, 유영은 고려에 살았고, 장연 변씨 5세대 후손인 려는 북송이 망해서 고려로 왔고, 려는 황주 변씨 1세대가 되었다. 변윤 (황주 변씨 2세대)은 진사(과거 제도에서 해당 시험에 합격한 사람)로 승진하여 안찰사(지방 장관), 변유 (황주 변씨 3세대)은 공부의랑(대령의 계급) 고려에서 관직을 가졌다. 변안열 (황주 변씨8세대, 원주 변씨 1세대)은 그의 조상인 제(황주 변씨4세대)과 눌(황주 변씨 5세대)은 고려에서 관직을 가졌다. 변안열의 할아버지, 순(황주 변씨6세대)은 원나라의 사신을 보좌해서 고려에서 원나라로 갔다가, ‘심양’지역 제후라는 관직을 원으로부터 받았다. 변안열의 아버지 변량(황주 변씨 7세대)이 ‘심양’지역 제후(瀋陽候)를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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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량의 첫째 아들, 안백(安伯, 황주 변씨 8대손)은 계속해서 '심양' 지역 봉건 영주(瀋陽候)의 관직을 맡았다. 안백의 둘째 아들인 숙이 원나라 학사(學士)로서 삼사공(三司公)을 따라 고려로 와서 가정대부 호부전서 (嘉靖大夫 戶部典書)를 지냈다. 변안열은 원나라에서 1334년 4남매중 둘째로 태어났고, 1351년 원나라 군인 시험에 1등 하여 형부상서(현재 장관급)라는 관직을 받고, 1352년 노국공주를 수행하며 고려로 왔다. 변안열은 원주 변씨(原州 邉(邊)氏)의 시조(始祖)가 되시고 배우자는 원주 원씨 (原州 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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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록(雜錄)에서는 ‘변공(邉(邊)公, 현玄)은 송(宋)나라 사람인데 금(金)나라를 피해 청서(靑嶼)로 와서 살았다. 아들 려(呂)와 손자 윤(允)이 존귀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고 써 있다. 변씨의 조상인 미중의 후손들은 은(상)나라, 춘추시대, 진, 한, 수, 당, 송 나라까지 동아시아에서 거주하다가 송나라 말기에 고려로 이주를 해 온다. 장연 변씨 1세대인 유영은 고려에 살았는데, 장연 변씨 5세대인 려는 북송에 살았다. 잡록(雜錄)에서 유영의 증손자, 변현이 려와 함께 송에서 고려로 온 것을 보면, 유영의 가족 일부만 고려로 오고 나머지 가족은 계속 송나라에서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