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변(邊/邉)씨 전서공파(典書公派) 및 첨지공파(僉知公派)
심양후(원), 전서공파(고려장관), 첨지공파(조선소장)
고려 918~1392, 송 960~1279, 원 1271~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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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천재적인 외교를 펼치는 천하의 나라로서 늘 동아시아 국가들과 우월한 관계를 맺어왔다. 고려는 자신감 있게 살았기 때문에 제국국가임을 자각하고 제국국가로서 주변국과 관계를 맺었다. 고려는 초창기 삼국을 통일하고 왕권보다 호족들의 연합체로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고려는 3가지 기간(고려왕 1-17, 17-23, 24-34)으로 나눌수 있다. 고려가 황제국이 될수 있었던 것은 고려와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후이다(고려왕 8대 현종). 거란 또는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국력이 송나라보다 우위에 있었다. 고려 왕 17대 인종(1146) 까지이었고. 고려 왕 18대부터 23대까지 무신정권이었고 이후는 원나라 간섭기였다. 요는 송을 정벌하기 위해 요나라 옆에 있는 고려부터 정벌했어야 했다. 하지만 요는 전쟁에서 많은 패배를 고려에게 당했다. 즉, 요는 많은 전투에서 송을 이겼지만, 고려을 이기지 못했다. 이후 고려는 요나라 송에게 강력한 나라로 간주되었다. 요는 원이름은 거란이고 거란이름은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Cathay Pacific은 거란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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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는 나라 이름을 몽골에서 원으로 바꾸었다. 동아시아에 사는 다수의 한족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한족식의 나라이름과 제도를 쓴 것이지만, 한족에 동화된 것이 아니었다. 거란, 여진, 몽골 사람들도 동아시아에 사는 다수의 한족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나라 이름을 요, 금, 원나라로 바꾸고 제도도 한족식을 사용했다. 송나라는 대하라는 나라와 거란에게 전투에서 졌고 군사적으로 힘이 없는 나라였다. 송나라는 대하 나라와 거란의 요구조건보다 많은 금, 은, 비단 등을 주면서 두 나라가 대등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송’과 ‘고려’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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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당’이라는 나라가 망한 뒤 5개의 나라(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로 분열되었다. 고려 광종 11년(960)에 ‘송’이라는 나라가 5개의 나라를 통일시켰다. 고려는 송과 교류하면서 송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한편, 송은 북쪽의 요와 금나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그래서 송은 북쪽의 요와 금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고려를 송나라와 힘을 합치고 싶어했다. 당시에는 요와 금나라의 위협으로 인해 송나라 사람들이 고려에 귀화하는 자들도 많았다. 잡록(雜錄)에서 려의 아버지 현이 려와 함께 금(金)나라를 피해 청서(백령도)라는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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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려 왕 현종 때 (1009~1031)에 고려는 요나라와 강화를 맺고 송나라와 공식적인 외교가 일시 중단되었다. 고려 왕 문종 때(1046~1083)에 송나라와의 외교를 다시하기 시작했다.
‘원’과 ‘고려’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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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는1206년에 칭기즈칸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리고 몽고는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고려 왕 고종 4년 (1237년)에 거란족이 고려에 침입하였다. 고려는 거란과 전투를 하는데, 우연히 ‘몽고’ 군인들이 함께 거란족을 상대로 전투를 하고 승리하여, 고려는 ‘강동’이라는 지역의 성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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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는 고려를 도와준 댓가를 고려에게 요구하였다. 마침, 고종 12년(1245)에 몽고 사신이 ‘고려’를 방문했다가 ‘몽고’로 돌아가는 중 사고로 살해되었다. 사신이 사고로 죽은 것을 이유로, 몽고는 고려 왕 고종 46 (1259)까지 6차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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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몽고와의 휴전은 고려 왕 원종 11(1270)에 성립되었다. 그러나, 불평등한 강화로 인해, 고려 무신 (군인 출신 신하)의 반대의 난을 일으켰다. 고려 무신은 몽고에 항전을 강화도라는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에 탄생한 무신정권 친위대를 삼별초라 한다. 삼별초는 그 후 탐라 (지금 제주도)로 옮기면서 ‘몽고’에 대한 항전을 계속하였다. 몽고는 고려 왕 원종 12(1271)에 나라이름을 ‘원’이라 바꿨다. 고려 말기 공민왕 때 (1351~1374)까지 고려는 원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고려시대 918~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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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고종(1232년), 24대 원종(1259-74), 31대 공민(1361)부터 려, 윤, 유, 제, 눌, 순, 안열의 활동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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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대의 왕이며 태조의 제위기간은 918~943이다. 왕건은 고려의 시조이며,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며 고구려의 땅을 회복하기 위란 정책을 했으며, 호족들과 혼인을 하여 국가를 안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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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대의 왕이며 혜종의 제위기간은 943~945이다. 왕건의 맏아들으로 이복동생들과 왕위 다툼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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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대의 왕이며 정종의 제위기간은 945~949이다. 왕건의 아들이자 혜종의 이복동생이다.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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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4대의 왕이며 광종의 제위기간은 949~975이다. 왕권 강화를 위해 원래 노비가 아니었는데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거나, 빚을 갚지 못하여 강제로 노비가 된 자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법을 제정하고, 과거 제도(imperial examination)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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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5대의 왕이며 경종의 제위기간은 975~981이다. 광종의 맏아들이다. 976년에 전시과(田柴科)를 제정하였다. 전시과(田柴科)는 고려 시대에 벼슬아치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던 제도를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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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6대의 왕이며 성종의 제위기간은 981~997이다. 그는 왕건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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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7대의 왕이며 목종의 제위기간은 997~1009이다. 경종의 맏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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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8대의 왕이며 현종의 제위기간은 1009~1031이다.그는 왕건의 손자이다. 거란군의 침략을 불력(佛力)으로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6천여권) 제작. 1019년 (현종 10)에 강감찬(姜邯贊)이 거란군을 귀주(龜州)에서 무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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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9대의 왕이며 덕종의 제위기간은 1031~1034이다. 현종의 맏아들이다. 과거제를 통해 조정에 입사하려는 최종 시험을 보조하는 예비 시험을 확립하였다. 이 절차는 국자감에서 시험을 통해 진사의 직책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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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0대의 왕이며 정종의 제위기간은 1034~1046이다. 그는 현종의 둘째 아들이다. 1044년 400 km 장성 (천리장성)을 완성, 양인 (良人, Common people) 남자와 노비의 여자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신분은 모계를 따라 노비가 되게 한 신분법을 제정했다. 첫째 아들에게 세대가 이어짐을 제정하였다. 유교문화 영향으로 사회적 지위, 권리에 남자를 우위에 두고 여자를 열위에 둔 문화적관행을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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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1대의 왕이며 문종의 제위기간은 1046~1083이다. 그는 현종의 셋째 아들이다. 고려시대 중 가장 찬란한 문화 황금기를 이룩한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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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2대의 왕이며 순종의 제위기간은 1083~1083이다. 그는 문종의 맏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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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3대의 왕이며 선종의 제위기간은 1083~1094이다. 그는 문종의 둘째 아들이다. 송나라의 제도를 참조하여 고려의 제도를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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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4대의 왕이며 헌종의 제위기간은 1094~1095이다. 그는 선종의 첫째 아들이다. 즉위 1년만에 왕위를 숙부(숙종)에게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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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5대의 왕이며 숙종의 제위기간은 1095~1105이다. 그는 문종의 셋째 아들이다. 돈을 주조하도록 하고 고려시대의 은화를 만들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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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6대의 왕이며 예종의 제위기간은 1105~1122이다. 그는 숙종의 첫째 아들이다. 장학 재단(Student Aid Foundation)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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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7대의 왕이며 인종의 제위기간은 1122~1146이다. 그는 예종의 첫째 아들이다. 김부식에게 삼국 사기(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를 편찬하게 하였고,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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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8대의 왕이며 의종의 제위기간은 1146~1170이다. 그는 인종의 첫째 아들이다. 정중부, 이의방 등이 무신정변을 일으켜 폐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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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9대의 왕이며 명종의 제위기간은 1170~1197이다. 그는 인종의 셋째 아들이다. 정권을 장악한 무신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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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0대의 왕이며 신종의 제위기간은 1197~1204이다. 그는 인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최충헌이 실권을 잡았으며, 만적의 난 등 민란이 잇달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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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1대의 왕이며 희종의 제위기간은 1204~1211이다. 그는 신종의 첫째 아들이다.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폐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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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2대의 왕이며 강종의 제위기간은 1211~1213이다. 그는 명종의 첫째 아들이다. 1197년 최충헌에게 쫓겨 강화도로 갔다가 1211년 최충헌에 의해 왕위에 다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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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3대의 왕이며 고종의 제위기간은1213~1259이다. 그는 강종의 첫째 아들이다. 그는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하며 28년간 항쟁하였다. 1232년(고려 고종 19년) 몽고 군사(蒙古 兵)이 송나라 수도 (宋京, 개봉 開封)을 침입하였다. 고종은 강화도(江華)로 피난을 갔고, 변 려(呂)가 고종(高宗)을 피난간 고종을 보필하였다. 그래서 고려 왕 고종은 변려에게 상장군(上將軍) 직책을 주었고, 보상으로서 태천 (泰天)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식읍(食邑)은 Tenant-in-chief라고 하며, 동아시아에서 나라에서 공신이나 왕족에게 내리던 토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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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4대의 왕이며 원종의 제위기간은 1259~1274이다. 그는 고종 첫째 아들이다. 친몽정책과 개경 환도 추진하였다.1269년에 임연에게 폐위되었고, 1270년 개경 환도 후, 몽고에 반대하는 삼별초의 항쟁이 있었다. 당시, 원주 변씨인 변윤 (允)이 안찰사(按察使), 변유(宥)가 공부의랑 (工部議郞), 변제(制)가 광록대부(光祿大夫), 변눌(訥)은 문하시중(門下侍中), 변순 (順)은 상장군 (上將軍)을 하였다. 1268년(원종9) 변순(順)은 원나라 사신을 보좌하여 원으로 가서 심양후(瀋陽侯)을 임명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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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5대의 왕이며 충렬 왕의 제위기간은 1274~1308이다. 그는 원종의 첫째 아들이다. 고려 왕이면서, 원나라의 사위로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였다. 변량 (諒)은 심양후(瀋陽侯)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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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6대의 왕이며 충선 왕의 제위기간은 1308~1313이다. 그는 충렬왕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원나라 사람이다. 그는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원 나라와 원을 따르는 신하들로 인해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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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7대의 왕이며 충숙 왕의 제위기간은 1313~1330이고 1332~1339이다. 그는 충선왕의 둘째 아들이다. 심양(Shenyang) 왕 고(충선왕의 조카)와의 정권다툼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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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8대의 왕이며 충혜 왕의 제위기간은 1330~1332이과 1339~1344이다. 그는 충숙 왕의 첫째 아들이다.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복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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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9대의 왕이며 충목 왕의 제위기간은 1344~1348이다. 그는 충혜 왕의 아들이다. 그는 8세에 즉위 해 12세에 죽었다. 국정을 어머니인 덕녕 공주가 섭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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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0대의 왕이며 충정 왕의 제위기간은 1349~1351이다. 그는 충혜 왕의 두번째 처의 아들이다. 12세에 원나라로부터 왕으로 책봉되었으나 3년만에 폐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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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1대의 왕이며 공민 왕의 제위기간은 1351~1374이다. 그는 충숙 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재건을 위해 개혁과 반원 정책을 단행하였다. 공민왕 10년(1361)에 변안열이 노국 공주와 함께 고려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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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2대의 왕이며 우 왕의 제위기간은 1374~1388이다. 공민왕이 시해되자, 그는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후 폐위되었고, 강화도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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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3대의 왕이며 창 왕의 제위기간은 1388~1389이다. 그는 우왕의 아들이다. 그는 9세에 즉위하였고, 이성계에 의해 폐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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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4대의 왕이며 공양 왕의 제위기간은 1389~1392이다. 그는 7대 후손이다. 그는 고려의 마지막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