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변(邊/邉)씨 전서공파(典書公派) 및 첨지공파(僉知公派)
심양후(원), 전서공파(고려장관), 첨지공파(조선소장)
조선시대(朝鮮 1392~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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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세종대왕을 비롯한 여러 인재들이 나라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성계는 조선건국에 명분이 부족하여 한족이 세운 나라인 명나라의 도움으로 조선건국의 명분을 세우고, 천자국 고려에서 제후국 조선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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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여러 나라를 상대하면서 여러 나라에게서 이득을 취하는 외교를 했고, 조선은 하나의 나라만 외교를 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하나의 나라 외의 다른 나라들은 몰랐고, 청, 일본, 서양 국가들에게 침략을 당했다. 고려시대에는 많은 외교관, 상인 등이 다른 나라와 왕래를 했으나, 조선 500년동안 다른 나라를 왕래한 사람이 5명이하인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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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왕을 황제라 하고 왕의 아들을 태자太子(황제의 아들)라고 했다. 조선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못했고. 왕을 왕이라하고, 왕의 아들을 세자世子(왕의 아들 successor of monarchy)라 했다. 고려는 황제국으로서 탐라국, 동쪽 여진, 서쪽 여진, 천리국, 흑수국을 제후국으로 하였다. 고려는 해동천자(동쪽에 있는 천자의 나라)라 했다. 고려는 여러 개의 천자의 나라들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려는 여러 하늘의 자손의 국가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조선은 스스로가 제후국이라고 생각했다. 즉, 고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라를 발전시킨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조상의 나라들은 다른 나라의 국력, 문화, 인종이 기준이 되어 다른 나라와 관계를 가졌다. 고려는 가장 우선이 되는 항목이 국력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가장 우선 되는 것이 인종, 중국 한족, 이었다. 그래서 중국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가 쇠퇴하고, 여진족의 나라인 청나라가 동아시아에 강국이 되었을 때, 조선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많이 주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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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고려와 조선의 왕 이름에 대한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왕의 이름 두 글자 중 두번째 글자인 글자, '조' 또는 '종', 이 있다. 글자 '조' 는 나라를 세웠다는 뜻이고 그 외에는 '종'으로 이른이 된다. 그래서 고려에는 이름에 글자 '조'가 있는 왕은 고려 첫번째 왕, 왕건, 뿐이다. 왕건을 태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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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선은 왕 이름에 글자, '조' 있는 왕이 여러명이다. 조선은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한 왕의 이름에 글자 '조' 를 사용했다. 즉 전쟁으로 조선이 위험했다가 평화를 찾았을 시기의 왕 이름에 글자 '조'가 있는 것인데, 원래의 뜻과는 부합되진 않는다. 왕의 이름 글자, '조' 또는 '종', 은 왕이 죽고 나서 불러진 이름이다. 살아있는 왕의 이름은 아무도 부를 수 없었다. 왕을 '위 상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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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결혼한 나이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 혼인을 한 나이는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16∼19세기 양반가의 혼서(婚書)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초혼 연령은 16세기 만 17.8세에서 19세기 만 17.8세로 낮아지며, 남성의 초혼 연령도 17세기 17.3세에서 19세기 15.7세로 낮아졌다.
조선시대 왕 계보
1대 왕 태조(이성계) 시기(1392~13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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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398년까지 태조는 ‘조선’의 첫번째 왕이며 이름은 이성계이다.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홍건적이 일으킨 ‘명’이라는 나라에 사대를 하고 국호 및 왕위의 승인을 받아 양국의 친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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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초기인 1393년3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에 비교적 많은 왜구의 침입 사례들이 나타난다.
3대 왕 태종(이방원) 그리고 4대 왕 세종(이도) 시기(1400~14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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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이고 고려말 변안열을 비롯한 여러 고려 충신들을 죽였다. 조선의 세번째 왕이며 형제들을 싸워서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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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조선의 네번째 왕이며, 이름은 ‘이도’이며 ‘충령대군’이라고도 불린다. 한글(현재 한국의 글자), 측우기를 만드는 등 여러 업적을 남겼다.
11대 왕 중종(이역) 그리고 인종 시기(1506~15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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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은 조선의 11대 왕이며 이름은 ‘이역’이다. 1520년(중종 25) 이적이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명나라의 마카오에 거류권을 얻은 사실을 전함으로써 조선 양반계급은 처음으로 유럽 사람들의 아시아 진출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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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은 재위 기간은 8개월로 조선 왕조 사상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왕이다.
14대 왕 선조(이연) 시기(1567~1608년):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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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조선의 14대 왕이며 이름은 ‘이연’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는 원병을 보내어 일본군을 격퇴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선조는 일본의 침입으로 수도를 버리고 ‘의주’로 도망 가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전투를 하였다.
15대 왕 광해군(이혼) 그리고 16대 왕 인조(이종) 시기(1608~1649년) - 병자호란, 서양과의 접촉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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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조선의 15대 왕이며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나라의 국력이 크게 소모된 사이에 만주 지방에서는 누루하치가 나라를 세워(1616년) 국호를 후금이라 하고 명나라의 변경을 위협하게 되었다. 그 뒤 후금은 더욱더 세력을 떨치게 되었는데도 조선에서는 인조반정(1623년)을 일으켜 후금을 배척하는 정책을 쓰자, 후금의 태종(1626~1643년)은 명을 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하여 군대를 내어 쳐들어왔다. (정묘 호란1627년 1월~3월). 후금은 더욱 국력을 확장하여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청으로 고쳤다. 1636년에 군신(왕와 신하) 관계 거절을 빌미로 청 태종은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왔는 데 이를 병자호란 (1636년 음력 12월~1637년 음력 1월)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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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조선의 16대 왕이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17대 왕 효종(이호) 그리고 18대 왕 현종(이연) 그리고 19대 왕 숙종(이순) 시기 (1649~17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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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은 조선의 17대 왕으로 청을 정벌하여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자는 북벌론으로 잘 알려진 왕로서 10년 치세 동안 조선 중흥의 기틀을 다진 임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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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현종은 1659년부터 1674년까지 재위한 조선 왕조의 18대 왕이었습니다. 그의 통치는 특히 장례식과 같은 다양한 문제에 대한 국가의 정파 간의 격렬한 갈등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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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이 조선을 다스렸던 기간은 조선이 개국된 이래 당파 싸움이 가장 심했던 시대였다. 그의 재위 기간 중에 남인과 서인의 당파간의 대립 관계가 더 더욱 치열해졌다. 1680년 초부터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어 이들도 서로 당파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한 당파가 다른 당파를 완전히 몰아내고 1당 정치를 하는 이른바 환국 정치가 주된 현상이 되었다.
20대 왕 경종(이윤) 그리고 21대 왕 영조(이금) 그리고 22대 왕 정조(이산) 시기(1720~18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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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은 기나긴 치세를 자랑하는 숙종과 영조 시대 사이에서 약 4년 간 재위하였으며 37살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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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탕평책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탕평책 (蕩平策) 조선 후기 영·정조대에 당쟁을 막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하려한 정책이다. 둘째 아들 사도세자와 갈등을 빗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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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왕위에 오른 시기는 본격적으로 천주교가 종교로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때였다.
23대 왕 순조(이공) 시기(1800~18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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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는 23대 왕이다.1816년(순조 16) 7월 19일에 충청도에서 영국의 이양선(異樣船 정체불명의 배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이 출몰하였다고 했다.
24대 왕 헌종(이환) 그리고 25대 왕 철종(이변) 시기(1834~18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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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은 24대 조선 왕이다. 1852년 (철종 3년) 음력 12월, 미국의 포경선 1척이 동래현 용당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이것이 조선과 미국 간의 최초의 접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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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은 조선왕조 임금 중 마지막으로 재위 중에 종신(終身)하게 된 왕이자 왕좌를 이어받게 되는 자손 없이 종신한 마지막 임금이다. 또한, 실질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이 편찬된 마지막 국왕이기도 하다.
흥선대원군(이하흥) 집권기(1864~1873년): 쇄국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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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이다. 고종이 어릴때 대리 왕권을 시행했다. 19세기 중반, 조선은 서구의 통상 요구에 대하여 국경을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를 탄압하고 프랑스인 성직자들을 처형하였다. 동아시아에 체류하던 미국인 상인 프레스턴(W. B. Preston)이 자신 소유의 상선(商船)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와 일행을 이끌고 대동강에 침입하였다. 성직자 처형을 구실 삼아 프랑스가 군대를 파견해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프랑스군은 수많은 재물을 약탈한 뒤 철수하였다(병인양요, 18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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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의 사과와 통상 교섭을 요구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신미양요, 1871년 음력 4월).
대한제국 大韓帝國 1987-1910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이희) 친정 시기(1873년~): 문호 개방과 외세 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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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대한제국 초대 황제이다. 임오군란 (1882년 훈련도감에서 해고된 구식 군인들의 13개월 동안 체불된 임금을 정부가 저급 불량쌀로 지급하여 일어난 난)이 일어났다 (1886년 7월, 음력 6월). 일본을 배후에 두고 있던 민씨 일족이 몰락하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했다. 청나라는 종주국으로서 속방(屬邦)을 보호해야 한다는 핑계로 이 기회에 일본에 빼앗겼던 조선에 대한 우월한 기득권을 회복하려 하였다.
여진과 청나라(淸 1636~1912)그리고 명(明 1368~1644)
조선은 압록강·두만강 이남이 한국 영토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이 때 여진사람, 누르하치가 주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새로운 강력한 여진 (미래의 청나라)을 형성하였다.